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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왜 고대 한국어 연구는 엉터리인가?

고대 한국어 (여기서는 삼국 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시기의 한국어를 말합니다)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은 동아시아 역사언어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한국어 자료는 그 중요성에 비해 전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 한국어와 한국사의 연구뿐만 아니라, 인접 지역의 언어와 역사의 연구에 있어서도 큰 손실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한국 학계의 무능함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단순히 연구 수준이나 연구자의 역량이 문제는 물론, 정상적인 학계에서라면 동료 평가를 통해 걸러졌어야 할 엉터리 연구가 멀쩡한 것처럼 출판된다거나, 심지어는 혁신적이고 뛰어난 연구로 평가받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학문의 기본적인 기능이 마비된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떤 독자 분들은 믿지 못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기성 학문에 괴상한 트집을 잡는 음모론자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은 타당한 의심입니다. 그러나 한국 학계의 고대 한국어 연구에 심각한 병폐가 있다는 사실은 고대 일본어 연구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연구자가 없다는 사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증명됩니다. 삼국 시대 한국어의 연구가 정상적으로 진전되고 있다면, 그 연구 성과는 인접 언어인 고대 일본어의 연구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고대 일본어는 고대 한국어보다 더 풍부한 문헌 자료가 남아있는 언어이지만, 기록이 시작된 시기가 다소 늦다는 점, 문자 체계 (한자)를 고대 한국어를 경유해 받아들였다는 점, 어휘의 측면에서도 불교나 행정 등에 관련한 단어를 고대 한국어로부터 받아들인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대 일본어'라고 부르는 나라 시대(奈良時代, 서기 8세기)의 언어가 성립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고대 한국어의 지식이 분명히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고대 한국어의 기존 연구가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과거 일본인 학자들이 고대 일본어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참고로 하여 고대 한국어 연구에 유의미한 성취를 남긴 역사가 있습니다. 반대로 현재의 한국인 학자들이 고대 한국어의 지식을 토대로 고대 일본어의 연구에 족적을 새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사언어학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 걸맞는 학문적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부끄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의 학자들은 객관적이고 엄정한 제3자의 시선에서는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내수용'의 엉터리 연구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한국 학계에 한정된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연구자들 역시 고대 한국어에 대한 엉터리 연구를 내놓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동아시아 역사언어학의 다른 부분 (주로 고대 일본어)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고대 한국어 자료를 동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에 대한 전문성이 없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외국 학자들이 인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연구를 생산하지 못한 한국의 고대 한국어 연구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무튼 부끄러운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왜 고대 한국어 연구는 엉터리인가?' 연재에서는 기존의 고대 한국어 연구가 어떤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사진은 일본 야마구치 현 이와쿠니 시에서 촬영한 표지판입니다. 편의점의 지점 이름에 '마리후(麻里布)'라는 지명이 보입니다. 마리후는 이와쿠니 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이와쿠니 역 일대를 가리키는 것인데, 1940년에 마리후 정과 이와쿠니 정이 통합되어 하나의 시로 출범하게 되었을 때 시의 명칭이 '이와쿠니 시'로 결정되면서 (말하자면 한국의 전라북도 이리시와 익산군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마리후는 이와쿠니 시의 하위 지명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이런 경위로 '이와쿠니(岩国)'에 대표 지명 자리를 내주게 되었지만, 마리후는 (이와쿠니와 동일하게) 8세기부터 문헌에 나타나는 유서 깊은 지명이며, 7년 전 학부생이었던 제가 고대 한국어의 기존 연구에 무언가 큰 문제가 있음을 확신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지명이기도 합니다.